문재인의 5·18 눈물로 뒤집힌 광주사태

김대중의 홍위병들의 반민주적 폭거

    글라이스틴 주한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고한 1980년 봄 상황은 그간 5.18 사기꾼들이 주장해 온 광주사태 발생 시대 배경과 사뭇 다르다. 5.18 왜곡세력이 숨기고 감추는 것이 김대중 홍위병들의 학원 내 폭거이다. 그러나 미 국무부 5.18 문건에는 그 사실이 여과없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아래는 글라이스틴이 4월 1일 송신한 전문 중 제1항이다:

    1. Confrontation over local issues continue on the nation's campuses, with resignations of Presidents now reported by Myongji and Chungang university and Chongshin Presbyterian Seminary (all in Seoul), cancellation of classes at Chongshin and Myongji and the continuing occupation by students of the President' office at the latter, and desctruction of the President's office at Chosun university in Kwangju. The President of Chonbuk Univeristy reportedly sparked demonstrations with his denial of earlier reports that he had agreed to resign. At the same time some disputes seemed headed for resolution, e. g. at Chosun University authorities to reject election of the student council chairman and agreed not to bring charges against students who had engaged in protestss, while students withdrew demands for President's resignation and both sides agreed to resume classes immediately.

    1. 한국의 대학교 교정들에서 학내 이슈에 대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으며, 명지대와 중앙대와 총회신학교 (모두 서울 소재) 등에서 총장들이 퇴진하였다고 지금 보도되었으며, 총신과 명지대학교에서 수업이 취소되었고, 명지대에서는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를 계속하고 있고, 광주 조선대학교 총장실이 파괴되었다. 전북대학교에서는 총장이 그가 사퇴에 동의했다는 이전의 보도를 부인하자 학내시위가 촉발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동시에 어떤 학내 분쟁은 진정 기미를 보였는데, 예를 들면 조선대학교 당국은 총학생회장 선거를 거부하고, 학내 데모를 한 학생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하고, 학생들은 총장 사퇴 요구를 철회하였으며, 양측 모두 즉각적으로 수업을 재개하기로 동의하였다.
미 국무부에 보고된 김대중의 홍위병들의 반민주적 폭거

    같은 4월 1일 보고서 제4항에서 글라이스틴 주한대사는 1980년 봄 총장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의 운동권 학생들의 폭력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학내 문제를 트집잡는 것이었음을 다음과같이 기록한다:

    4. The press coverage of the disturbances which have occured so far clarify for the public at large that students and school administrators are sorting out many problems of a practical nature, and that the students are not simply crusading for democracy in Korea.

    4. 지금까지 발생한 학원 내 소요에 대한 언론 보도는 일반 대중에게 학생들과 학교 행정가들이 현실적인 성격의 여러 문제들을 추려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학생들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데모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한다.

    1980년 3월 총장실 입구에 의자와 책상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전국 대학교 총장실 점거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그 배후가 김대중이었다. 김대중식 민주주의는 참으로 이상한 민주주의였다. 김대중은 정당도 소속 정당도 없는 정치인이었으며, 그의 정치기반은 조총련계 한민통의 한국지부였다. 세계 그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이 자기 홍위병들 시켜서 각 대학교 총장실 점거하게 하는가?

    김대중의 홍위병들은 '민청협'이라는 명칭의 복학생 조직이었다. '민청협' 회원들은 주로 1974년의 민청학련 사건 주동자들이었으며, 민청학련을 원격조종한 배후가 왕년의 빨치산 박현채였다. 1980년의 광주무장반란 이전에도 북한세력과 종북세력이 국가전복을 여러차례 시도했었는데. 그 중 가장 굵직한 두 사건이 1968년의 통혁당 사건과 1974년의 민청학련 사건이었다. 박현채도 김사복도 함석헌과 장준하의 동지였는데, 박현채가 한창 민청학련 사건 음모를 추진하고 있었던 무렵인 1974년 1월에 김사복이 함석헌과 장준하와 어울리고 있는 모습이 아래 사진에서 보인다.

1974년 1월 김사복과 함석헌과 장준하
▲ 1974년 1월 민청학련 사건 음모가 한창 진행되던 무렵에 함석헌 및 장준하 최측근 동지였던 김사복이 그 해 8월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공작 때 문세광의 공범 역할을 하였다.

    1980년 삼일절을 하루 앞두고 최규하 대통령은 687명을 복권 조치하였는데, 그 중 절반이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 즉 '민청협' 회원들이었으며, 3월 2일 복학한 뒤 복학생 그룹을 조직하여 데모를 주도하였다. 한민통은 즉각적으로 김대중에게 '민청협' 간부들을 홍위병으로 고용할 자금을 지원해 주었으므로 곧 '민청협'은 김대중의 사조직으로 흡수되었다. 각 대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총장실을 점거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이 김대중 지지 성향이 아닌 총장들과 교수들을 어용교수로 매도하여 강제로 사퇴시킬 목적으로 지시한 것이었다.

    5.18 사기꾼들이 1995년의 5.18 재판 때는 15년만에 갑자기 말바꾸기를 하여 광주시민군은 유신헌법에 의거한 박정희-최규하 대통령 정권 충신들인데, 전두환이 박정희-최규하의 유신정권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박정희-최규하의 유신정권 수호를 위해 광주시민들이 총과 무기를 들고 무장봉기를 일으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5.18 사기꾼들이 광주사태 당시에는 정반대로 말했었다. 5.18 사기꾼들은 광주사태 당시에는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전두환도 최규하 대통령, 신현확 총리와 더불어 유신잔당이라는 주장을 성명서와 대자보를 통해 여러번 했었다.

5.18 이전 성명서

    김대중 일당이 학생 운동권에 학원내 시위를 가두시위로 전환하라고 지령을 내린 위 성명서에서 그 지령 대상에 문재인도 포함됨이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歷史上 조그만 勝利에 陶醉하여 하잘것없는 戰利品의 獲得에 精神이 팔린 나머지 敵의 主力部隊에 對한 경계를 疏忽히 하다가 敵의 大大的인 反擊을 받아 敗北한 例는 수 없이 많다. 敵의 主力部隊를 完全히 섬멸시키지 못하는 限. 敵의 戰列을 再整備하고 새로운 同盟軍의 응원아래 再次 반격을 加할 가능성은 常存하는 것이다.     10.26以後 6個月동안 우리는 一部 政治犯의 석방과 復權 一部 학우들의 復校 등 조그만 승리에 들떠 있었고 학내 民主化나 병집거부 등 사소한 戰利品 획득에 精神이 팔려 있었던 것이 事實이다 (서울대학교 학생회 1980, no1).

    위 성명서 둘째 단락에서 "一部 학우들의 復校"는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반대하는 과격한 종북좌익 데모를 주동하여 제적당했다가 1980년 3월 2일 복학한 복학생들을 지칭하며, 여기에는 경희대 데모꾼 문재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1980년 4월 말에 김대중 일당이 대학가 가두시위를 선동할 목적으로 작성하여 대학가에 뿌린 위 성명서 세째 단락에는 김대중 세력이 광주사태 당시에는 12.12 사태를 전혀 쿠데타로 보지 않고, 그 정반대로 전두환을 박정희의 양자라고 불렀던 사실이 이렇게 나타나 있다:

    유신잔당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박씨의 양자인 전가는 아버지가 주신 보안사령관직에 중정부장까지를 두팔에 감싸안고 있다 (서울대학교 학생회 1980, no1).

    여기서 박씨는 박정희 대통령을, 전가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지칭한다. 5.18 사기꾼들이 전두환을 유신잔당 및 박정희의 양자로 호칭하였을 때는 그 의미는 전두환은 박정희 정권의 충신 중의 충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5.18 사기꾼들이 12.12 사태가 쿠데타였다고 말하지 않고, 정반대의 말을 했었다.

    5.18 사기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말의 과장이 심하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까지를 두팔에 감싸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김재규 중정부장이 대통령을 시해한 후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6개월간 동안 중정부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그 시절에는 보안사령관 출신이 중정부장 적임자였으며 그래서 임기 한달짜리 서리직에 4월 하순에 취임한 것이었다. 1995년에 5.18 재판이 시작되자 5.18 사기꾼들은 말바꾸기를 하여 전두환이 중정부장 서리였으니까 쿠데타라고 하였다. 그러나 광주사태 당시 김대중 일당의 성명서 독자들은 "박씨의 양자인 전가는 아버지가 주신 보안사령관직에 중정부장까지를 두팔에 감싸안고 있다"는 말을 전두환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중정부장 서리가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그것이 전두환의 쿠데타요, 내란이란 말인가?

    만약 채동욱 검사와 최환 검사는 5.18 사기꾼들이 광주사태 당시에는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자라고, 전두환도 유신잔당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이것들은 5.18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도 무식한 것들이 5.18 재판 공소장을 작성하였다. 만약 채동욱 검사와 최환 검사는 5.18 사기꾼들이 광주사태 당시에는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자라고, 전두환도 유신잔당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이것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전두환을 내란죄로 엮은 악질 검사들이다.

    "유신잔당 타도에 총력을!!" 이란 제목의 위의 5.18 이전성명서는 광주사태는 사전 준비되어 있었음을 입증하는 유네스코 5.18 기록물들 중의 하나이다. 이 성명서는 김대중의 연설문 담당 비서 박현채가 작성하여 '서울대학교 학생회'라는 위장명의로 4월 하순부터 5월 2일 사이에 서울대 캠퍼스에 유인물로 살포한 성명서이다. 위 성명서에서 '유신잔당'과 더불어 또 하나의 키워드는 '학내 민주화'이다. 김대중 일당은 김대중 홍위병들이 각 대학교에서 김대중 지지 성향이 아닌 총장과 교수들을 강제로 사퇴시키는 데모를 '학내 민주화' 시위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학내 민주화' 시위가 바로 글라이스틴 주한대사가 4월 1일 미 국무부에 민주화운동이 아닌 폭력사태로서 보고한 내용이다.

조선대 폭력사태에 대한 신만식의 증언

    글라이스틴 주한대사가 보고한 운동권 학생들의 폭력사태(5.18 사기꾼들의 용어로 학원민주화)를 실증하는 증언이 신만식의 증언이다. 신만식은 광주사태 때 깡패로서 활동한 경력을 인정받아 5.18민주유공자가 되었고, 문재인이 헌법 전문에 넣으려 하는 5.18 정신도 그의 조폭 정신이다. 그런데 그 신만식이 글라이스틴 대사가 "and desctruction of the President's office at Chosun University in Kwangju"(광주 조선대학교 총장실이 파괴되었다)라고 기록한 사건의 현장 목격자이다. 왜냐하면 광주사태 주동자들의 공격 대상이었던 박철웅 총장을 신만식이 광주 조폭 조직을 동원하여 구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일화를 신만식은 이렇게 증언한다:

    1980년 5월 3일 조선대 총장인 박철웅 씨를 학생들이 감금한 사건이 일어났다. 박철웅 씨측에서는 광주시내의 건달들에게 박철웅 씨를 구출해 주면 그만큼의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나는 우리의 조직을 동원하여 그 일에 가담했다 (신만식 1989)

    실로 이것은 인권변호사 문재인과 박영수 특검이 '광주민주화운동 방해죄'로 엮을 만한 사건이다. 9월 4일이면 계엄령이 해제된지 한참 지나 김선옥이 계엄군에게 성폭행 당했을 리 만무함에도 최근 문재인이 황당한 가짜뉴스에 낚여 5.18계엄군 성폭행 의혹을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린바 있다. 그렇다면, 화순의 5.18국가유공자 신만식이 고백한 사건, 즉 '광주민주화운동 방해죄'을 엮일 수 있을 만한 사건에 대해서는 문재인이 조사해 보라고 하지 않을 것인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전혀 광주무장폭동을 방해한 적이 없었다. 그는 광주에 간 적도 없었고, 광주사태 기간 중에는 광주사태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도 없었고, 그 누구와도 광주사태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철부지 채동욱 검사는 폭동 방해=내란죄로 엮어 전두환을 기소하고 사형을 구형하였다. 이에 비해 신만식의 경우는 김대중 홍위병들이 대학교 총장을 감금하는 폭행을 방해한 혐의가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면 문재인이 이런 의혹도 조사하라고 지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듯 글라이스틴 대사가 기록하고, 신만식이 증언하는 학원내 폭력 사태, 즉 전국 여러 대학교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총장실을 점거하고 김대중 지지 성향이 아닌 교수들을 폭력과 모욕 대상으로 하는 홍위병들의 난동, 이른바 '학내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학내 민주화' 시위는 고도로 정치적 계산이 깔린 시위였다. 계엄 하에서 바로 가두시위를 선동하면 응할 학생들이 없다. 그러나 '학교 내의 시위'는 재학생들의 호응을 얻기 쉬웠다. 문재인을 포함한 복학생 대부분이 직업적 데모꾼들이었으며, 직업적 데모꾼들이었던 김대중의 홍위병들이 누명을 씌워 유언비어와 흑백선전으로 엮으면 재학생들은 쉽게 선동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학내문제라니까 김옥길 문교장관도 경찰 병력 투입을 요청할 수거 없었다. 김대중 홍위병들이 난동을 부려도 경찰이 보호해 줄 수가 없는 사회가 되었으니까 각자 스스로 생존할 길을 찾아야 해서 박철웅 총장도 경찰이 아닌 깡패들에게 구출을 요청해야 했던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4월 1일자의 전문을 게속 읽어보면 미국 대학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학생들의 무례한 폭력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의아하리만큼 정부와 문교부가 사태 해결을 위한 개입을 안하고 있었다.

    김대중의 사조직들이 '학내 민주화' 나팔을 불면 게엄 하인데도 당국의 제지를 받지 않고 마음껏 데모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북한이 좋아하는 전리품도 많이 거두었다.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일년에 한 주 문무대 입소 훈련을 하고 3개월의 병역을 단축해 주는 특혜가 있었는데, 3개월의 병역 기간 단축 특혜는 그대로 누리면서 1년에 한주간의 집체훈련은 거부하겠다는 얌체 요구도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김대중 세력이 진짜 노린 것은 계엄하에서 가두시위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전기한 바와 같이 만약 홍위병들이 곧 바로 가두시위를 선동하였으면 계엄 하에서 응할 재학생들이 없었다. 그런데 두 달 반 동안 캠퍼스 내에서 데모하여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교문 바깥에 나가 데모하는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계엄사 입장에서도 교문 안 시위와 교문 바깥 시위가 엄밀히 구별이 안 되어 군 병력 동원을 할 수가 없었다.

    김대중의 연설문 담당 비서 박현채가 "유신잔단 타도에 총력을!!"이라는 제목으로 작성하여 4월 하순부터 5월 2일 사이에 서울대 교정에 뿌린 성명서 유인물은 바로 그것을 노리고 5월 중순으로 대규모 가두시위 일정을 정하고, 이제부터 학내 이슈를 정치 이슈로 바꾸고 가두시위하자고 선동하며 지령을 내리기 위한 성명서였다. 아래 영상은 그 성명서 지령에 따라 김대중 홍위병들이 조직한 5월 15일의 폭력시위에 북한이 사복 북한군들을 많이 지원해 주었음을 보여준다.


    위 영상을 아래 싱가포르 미북회담 다큐멘터리 영상과 비교해 볼만하다. 싱가포르 회담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회담인데도 당사국 한국은 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방송사 기자들은 회담 장소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북한 기자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모든 것을 근접 촬영할 수 있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에서의 시위장면을 북한세력만 다큐멘터리로 촬영할 수 있었던 것도 비표를 한 사복 북한군들이 언제 어디서 차량 테러 등 어떤 폭력시위를 할지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김대중 일당이 위장 명의로 뿌린 위의 4쪽짜리 삐라 4쪽을 보면 1980년 5월 서울에서 김대중의 홍위병들이 조직한 대규모 시위에 북한이 사복 북한군들을 지원해 준 이유가 선명히 드러난다. 그것은 최규하 과도정부가 간선제를 직선제로 개정하는 개헌을 하기 전에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 김대중을 앞잡이로 내세워 남조선 인민공화국 헌법을 제정하는 것이었다.

「維新殘黨 打倒에 總力을!!」 4쪽
지금 김정은이 문재인을 앞잡이로 내세워 연방제 적화통일을 성사시키려 하고 있는 것처럼 38년 전에도 김일성이 김대중을 앞잡이로 내세워 연방제 적화통일을 성사시키려 했었다. 김대중 일당과 간첩단이 위장명칭을 사용하였던 위의 성명서 「維新殘黨 打倒에 總力을!!」 4쪽에는 북한이 '민청협' 고문 문익환 목사를 시켜 '민청협'에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조직하라고 지령을 내린 이유가 이렇게 밝혀져 있다:
비상계엄 해제는 유신하 구악의 청산과 국민주도 헌법제정을 위한 선결조건이다.
유신잔당 타도에 총력을!!
반격을 위한 유신잔당의 준동이 明白한 이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학내민주화, 병집거부에 정신이 팔려있을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얽매어 질질 끌려 갈때에 기뻐할자는 유신잔당뿐이다. 학우여! 유신잔당 타도에 우리의 모든 力量을 총집결하자!” (서울대학교 학생회 1980, no4).

    '민청협'으로 일컬어지던 김대중의 홍위병들 및 지하 종북조직을 원격조종하고 있었던 간첩단은 그냥 평범한 기두시위를 조직하였던 것이 아니라, 그들 용어로 '해방전쟁'을 위한 유격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명서에 살벌한 전술 용어들이 많이 있다. 총4매의 성명서는 꽤 긴데 이 긴 성명서 전체를 이해찬인들, 유시민인들, 한홍구인들 외울 수 있겠는가? 이 성명서 원 저자가 남파 공작원이었기에 그 원문이 북한에 있으며, 북한의 1982년판 5.18 도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비상계엄 해제는 유신하 구악의 청산과 국민주도 헌법제정을 위한 선결조건이다. 반격을 위한 유신잔당의 준동이 명백한 이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학우여 유신잔당 타도에 우리의 모든 력량을 총집결하라” (조국통일사 1982, 560).

    문재인을 앞잡이로 내세우고 2016년 10월부터 진행된 사기탄핵에도 북한세력의 치밀한 전략이 있었으며, 그 전략이 적중한 덕에 '불법' 보궐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이 연방제 적화통일로 일보 더 나아가는 개헌을 서두르고 있다. 이처럼 1980년 봄에도 김대중을 앞잡이로 내세워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 남조선인민공화국 헌법(대남공작 용어로 '국민주도 헌법')을 제정하려는 북한세력의 다단계 음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단계가 이 기사 상단에서 보듯 글라이스틴 주한대사가 자세히 관찰한 학원 내 폭력사태, 이른바 김대중 홍위병들의 '학원 민주화' 시위였다.

(2018년 6월 15일 일부 작성 완료. 본 기사 관련 증거 자료들이 워낙 방대하므로 나머지 집필은 두 달 후로 미룸.)

* 위 기사에서 인용된 문헌들의 자세한 문헌정보는 '문재인의 5.18 눈물로 뒤집힌 광주사태' '역사로서의 5.18' '임을 위한 행진곡' 등 김대령의 저서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