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5·18 눈물로 뒤집힌 광주사태

조국의 은행돈 횡령 공동정범 문재인


문재인은 마치 비리 종합세트인 조국이 자신의 경제공동체를 넘어 운명공동체인양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문재인이 조국의 동남은행 대출금 횡령 공범이기 때문이다.
동남은행 파산관재인 문재인
조국의 검은 돈 사건의 전모는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 제1장을 일독하여야만 그 전모가 파악될 수 있다. 금융에 얼키고설킨 조국과 문재인의 관계는 20년 전의 IMF 환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병언 일가는 신세계종금에 2천억 가까운 채무를 지고 있었고, 조국 일가는 동남은행에 35억원의 채무가 있었다. 조국 일가가 1998년 연초에 35억원을 동남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직후 동남은행은 파산하였고, 문재인은 신세계종금과 동남은행 두 은행의 파산관재인이었다. 그때 문재인은 부도덕하게도 채권자와 채무자 양편으로부터 수당과 수임료를 받아 챙겼다.

그즈음 조국의 선친 회사도 유병언의 회사도 부도를 내었다. 돈을 빌려준 은행과 빌린 회사가 모두 파산하였을 때 미회수 대출금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국가는 은행의 부실 채권을 (신용보증기금이나 한국자산공사 등을) 통해 메꾸어주고, 법원은 파산관재인을 선임하여 파산 은행을 대리하여 채무자의 재산을 가압류하게 한다. 부산에서는 법무법인 부산 대표 문재인이 은행 파산관재인이었다. 그런데 문재인이 유독 유병언 일가와 조국 일가에 대해서는 채무 변제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세월호 참사의 화근을 제공하고, 조국의 검은 돈이 증식되게 하였다.

유병언 일가는 문재인의 부인 김정숙과도 친분이 있었다. 역시 부산 출신인 유병언은 채무 변제를 안하다가 2003년 봄에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일본에서 폐선을 수입하여 청해진해운을 설립하고 인천과 제주 사이 독점 항로를 따는 특혜를 누렸다. 2008년 2월에 문재인의 비서실장 임기가 끝나기 한 달 전에 유병언의 부채 2천억원이 탕감되고, 그와 동시에 양산 저택 소유자가 문재인이 되었다. 훗날 문재인은 자기가 유병언의 부채를 탕감해 준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법원에서 탕감해주게 되어 있었다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그때도 문재인이 여전히 신세계종금 파산관재인이었기 때문에 문재인이 그렇게 말하면 안되었다. 국가가 2천억원의 손해를 보지 않도록 유병언의 재산을 가압류하여야 할 의무가 문재인 변호사에게 있었다.

1998년의 은행 채무가 2008년 연초까지 여전히 변제되지 않았을 때는 법원이 자동적으로 탕감해 주도록 되어 있었다는 문재인의 주장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그러면 그런 제도가 조국 일가가 변제하지 않은 35억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용되는가의 문제이다. 조국 일가는 동남은행에 35억원의 빚을 지고 있었고, 동남은행 파산관재인 역시 문재인 변호사였다. 문재인의 주장대로라면 조국 역시 유병언처럼 채무 변제를 안하고 시간을 끌면 언젠가는 국가가 전부 탕감해 줄 것인데 왜 자기 돈으로 변제를 하느냐의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다. 세월호 참사는 문재인이 유병언을 소도둑으로 키웠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조국도 처음에는 파산된 은행 채무 변제를 안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국가가 탕감해 준다는 문재인의 논리에 힘입어 가벼운 모럴 해저드가 있는 바늘 도둑이었는데, 지금 이것이 사모펀드라는 조국게이트가 커질 만큼 조국이 소도둑이 된 것이었다. 아래는 조국게이트라 불릴만한 사건의 발단 배경과 전모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팩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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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동중학교는 1976년 동네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한 주에 5000원 하는 ‘개강 장학증서’를 지역 주민들이 이걸 하나 둘씩 사서 웅동학원 운영에 보태고, 지역 유지들이 무상으로 진해구 마천동에 학교 부지를 기부하여 출발한 학교이다. 그래서 학교 부지는 조국 일가가 팔아서는 안 되는 땅이었다. 

[1912년 경남 웅천지역에 설립된 계광학교는 전혀 다른 학교이며 그 학교는 1933년에 문을 닫았다. 1952년 한국전쟁 기간 중에 웅동중학교가 설립되어 명맥만 이어오다가 1976년 지역 유지들이 땅을 기부하고 학교 운영비를 모금함으로써 비로서 학교의 면모를 갖추었던 것이다.] 

1985년 조국의 선친 조변현씨가 이사장을 맡더니 1995년 두동 두메산골로 학교 이전을 추진함으로써 시내의 땅값 비싼 부지가 자기 소유가 되게 하였다. 조변현은 건축업자였다. 학교 이사장이었던 그는 학교 신축교사 공사를 자기가 수주한 후 둘째 아들 조권에게 16억 5천만원에 하도급을 주었다.  공사비가 많이 드는 이유는 버스도 안 다니는 먼 산골에 학교를 지으려면 먼저 산을 깍고 터를 닦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땅값이 비싼 시내에서 아주 싼 산골로 이전하는 것이기에 그 차익으로 학교를 지을 수 있음에도 조변현 이사장은 순전히 은행대출금으로 지었다. 100퍼센트 은행 대출금으로만 지어도 16억원이면 충분했는데, 무려 44억 5천만원이나 대출받았다. 그 중 35억원은 1996년, 1998년 두차례에 걸쳐 동남은행에서 대출받았다. 

공사는 1996년에 진행되었고, 1998년에 웅동중학교는 산중턱의 새 교사로 이전하였다. 공사 하도급을 받기 위해 이사장 둘째 아들이 만든 회사 고려시티개발은 공사비를 받지 못해 파산하였다. 즉 이 말은 조국 동생이 인부들의 임금을 떼먹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조국 일가가 동남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35억원은 어디로 갔는가? 동남은행은 조국 일가에 35억원을 대출해 준 직후에 IMF 직격탄을 맞고 1998년에 파산하였다.

조국 부친 회사도 은행에서 수십 억원을 대출받은 직후 부도를 냈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조국 부부의 미국 석박사과정 학비를 송금할 수 있었는가? 

조국 부부가 1997년 12월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 1년 6개월 동안에, 즉 IMF 환난이 한창이었던 때에 5억 5,000만원을 들여 아파트 3채를 샀다. 이때는 조국이 아직 무직이었을 때인데 어떻게 금방 다주택 소유자가 되었는가? 학교 공사비로 쓴다며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공사비 지불에 사용하지 않고  서울 송파구 아파트와 부산 해운대 아파트 두 채를 구입하는데 쓴 것인가?

조국 일가에 35억원을 대출해 준 직후 동남은행이 IMF 환난으로 파산하자 법무법인 부산 대표 문재인 변호사가 부산법원을 상대로 로비하여 동남은행 파산관재인이 되었다. 즉, 동남은행으러부터 사건 당 수당을 받고 조국 일가로부터 35억원을 받아낼 권한과 의무가 문재인에게 있었으나 문재인은 (뇌물을 받고) 파산관재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문재인의 인권변호의 속 내용은 은행 채무자들의 재산 가압류 집행을 하고 은행으로부터 건당 수당을 받는 것이었다. IMF 환난으로 인해 부산에서 파산한 신세계종금과 동남은행 채권을 위한 가압류 집행 권한 및 의무는 문재인에게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변호사가 유독 유병언 일가가 신세계종금에 진 채무와  조국 일가가 동남은행에 진 채무에 대해서는 눈 감고 봐주기를 하였다. 즉, 유병언 일가와 조국 일가는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고 횡령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문 변호사가 방조한 것이었다. (이런 사실은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 제1장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음.)

파산관재인 문재인이 조국 일가로부터의 채권 회수 의무를 긴 세월 이행하지 않자 마침내 채권이 캠코(KAMCO: 한국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갔다. 동남은행이 없어졌음에도 이렇게 채무 대상이 동남은행에서 캠코로 넘어가자 조국 일가 중 누군가가 대출금을 합법적으로 떼먹은 기발한 꾀를 내어 2005년에 조국 동생 조권으로 하여금 코바씨앤디를 세우고 이듬해 2006년 웅동학원에 공사 대금 채권 청구 소송을 냈다. 웅동학원측(이사장인 조국 부친과 이사 조국)이 아무런 변론을 하지 않아 패소했다. 그 결과 조국 동생 조권이 웅동학원을 상대로 1순위의 채권자가 되었다. 

10년 전 1996년에 조권에 16억원에 공사 하도급을 받았고, 10년 동안 이자가 붙어 2006년에는 52억원으로 불어났다. 이 말은 국가기관인 캠코가 미수금 회수를 위해 웅동학원 자산을 가압류할 경우 52억원이 조국 일가의 개인 재산이 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즉, 학교가 원래 지역 유지들의 기부와 주민들의 성금으로 설립되었다 할지라도 폐교하거나 자산이 처분된 후에는 52억원이 조권의 개인 소유가 되는 구조였다. 동생 조권과 전 제수씨 소유의 코바씨앤디가 받는 연이율은 24%인데 비해 캠코가 받는 연이율은 아주 싼 6%에 불과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웅동학원을 상대로 하는 채권을  코바씨앤디에서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기이한 구조이다. (웅동학원은 현재 조국 동생과 동생의 전처에게 68억원, 캠코에 74억원 상당의 채무를 지고 있음.)

 [건축업자가 아닌 조국 동생이 세운 코바씨앤디야말로 채무를 채권으로 전환시키는 조국 일가 특유의 금융기술 활용을 위한 페이퍼컴퍼니이다. 이런 불량 건축회사 명칭을 다수의 사람들이 캠코와 헷갈리게 할 코바씨앤디로 정한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2009년 조국 동생 조권이 부인과 이혼한 후 채권은 전부인 소유가 되었으며, 2017년에 전부인이 웅동학원을 상대로 100억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으며, 이번에도 학원측이 무대응 패소하였다. 지금 현재는 조권이 위장 이혼한 부인이 받아야 할 돈이 140억원으로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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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조국 일가에게 35억원을 대출해준 동남은행 파산관재인이었다는 사실을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id=Q5t7DwAAQBAJ 제1장에서 자세히 보기.


1. 태블릿PC는 줏은 것이 아니라 홍석현 회장에게서 받은 것이다

    손석희의 태블릿 입수경위는 줏은 것이 아니라, 2016년 10월 9일 홍석현 회장에게서 받은 것이다 (중앙일보 임원 녹취록). 손석희는 처음에는 심수미 여기자가 10월 20일에 고영태 사무실 쓰레기통에서 줏어온 것처럼 들리게 보도하였으나, 심수미는 그때 서울이 아닌 독일에 있었다는 사실 및 폐쇄회로에 찍힌 인물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사실 등이 탄로나자 말바꾸기를 하였다. 손석희기 이렇게 입수 경위에 대하여 자주 말바꾸기를 한 것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여 가짜뉴스를 만들어 보도하였음을 드러낸다. 그러면 거짓말을 지어내어 가짜뉴스를 만드는 앵커가 그 태블릿은 최순실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 주장에 신뢰가 가는가?

    손석희는 최순실이 고영태에게 주었기에 그 태블릿이 고영태 사무실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방송 보도하였다 (JTBC 2016.10.26). 그러면 심지어 고영태와 노승일도 최순실은 전혀 태블릿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증언하는 것을 손석희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만약 고영태가 사용하던 태블릿이라면 어째서 고영태가 소유했음을 보여주는 파일이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는가?

2. 손석희의 두가지 비밀: 10월 4일 고영태 친구들과 회동 & 10월 10일 여아나운서 안나경과 최순실 동네로 휴가감

    JTBC가 처음 태블릿 보도를 하기 20일 전인 10월 4일에 손석희는 고영태 사단(고영태의 한체대 동기들인 노승일과 강지곤 및 2년 후배 박헌영)과 회동하고 "강지곤 차장과 인터뷰했었다" (노승일 증언). 손석희는 언론을 문재인 일당 프로파간다 매체로 활용하고 문재인의 정적들을 모함하는 앵커이다. 그런 손석희가 무슨 이유로 고영태 최측근 강지곤 차장을 만났으며, 왜 그런 사실을 숨기는가?

고영태의 야심

    그해 여름부터 고영태와 노승일과 박헌영과 강지곤 등 고영태 사단은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과 사무총장을 내쫓고 재단을 장악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고영태 사단은 재단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위해 TV조선 이진동 기자를 이용하려 하였고, 이것을 기회삼아 이진동 기자의 TV조선과 김의겸 기자의 한겨례신문이 가짜뉴스들을 보도하자 전경련은 K스포츠재단을 해산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박헌영 등 고영태 일당은 경제적 이득을 보기 위해 K스포츠재단을 장악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도대체 손석희가 10월 4일 고영태 최측근을 찾아가 뭐라고 말했기에 10월 24일의 가짜뉴스 이후 노승일과 박헌영은 손석희가 원하는 말, 즉 최순실에게 누명을 씌워 엮을 수 있는 말을 한 것인가?

    고영태는 최순실을 모함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립이었다. 고영태에게 중요한 것은 돈벌이였고, 특정 정당 지지가 아니었다. 물론 고영태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접촉해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했었지만 당원 자격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또 한 인물이 최순실을 모함하여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확대되었는데, 그 인물은 건물관리인 노광일이었다. 고영태와 달리 노광일을 당원이었다. 통진당 당원이었으며, 노회찬의 정의당 당원이었으며, 노회찬이 심은 정치 스파이 역할을 하였으며, 노회찬 후원회 회장이 이듬해에 문재인 정부 정무수석이 된 조국이었다. 그때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손석희의 가짜뉴스를 열심히 페북에 퍼나르는 방법등으로 손석희와 긴밀히 협조하며 여론몰이 인민재판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10월 4일 고영태 일당 대표와 밀담을 나눈 손석희는 5일 심수미 여기자를 보내 고영태에게 술을 사주고, 여기자가 이성한·고영태와 두 시간 동안 술 마시에 한 후 9일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 태블릿PC를 받고, 바로 그 다음날 10월 10일에 갑자기 안나경 여아나운서와 함께 독일 최순실 동네로 휴가를 갔다. 10월은 휴가철도 아니고, 프랑크푸르트는 휴양지도 아니다. 손석희가 젊은 여아나운서 데리고 사람들 눈에 안띄려고 숨어 다녔는데, 프랑크푸르트는 한국인들이 아주 많은 도시였다. 그러면 왜 손석희가 세계 도처의 좋은 휴양지들을 다 놔두고 하필 그 프랑크푸르트로 여아나운서와 함께 휴가를 갔었을까?

    사기탄핵에 이용할 가짜뉴스를 구상하던 손석희가 최순실 동네로 휴가를 간 이유가 있었다. 9월 3일에 박헌영이 고영태 사무실 보안카드를 건물관리인 노광일에게 주며 고영태 책상을 잘 관리해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그 이유는 고영태의 원목책상 서랍 속에 고영태의 회사 서류 뭉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서류들은 간단하였다. 하나는 고영태의 사업자등록증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에 있는 고영태와 노승일의 스포츠컨설팅 회사 등기 서류였다. 고영태와 노승일의 원래 계획은 2015년에 독일로 이민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거주할 수 있는 비자 신분을 만들려면 펜싱 선수 출신 고영태는 펜싱 컨설팅, 베드민턴 선수 출신 노승일을 베드민턴 컨설팅한다는 스포츠컨설팅 등기 서류가 필요했다. 결국 고영태와 노승일의 독일 회사는 등기 서류만 있는 페이퍼컴퍼니인데, 이석기 추종자로서 건물관리인이었던 노광일은 이 서류를 발견하자 대단한 정보를 발견한 양 노회찬 정의당 대표에게 보고하고, 경향신문과 JTBC 등에 제보하였다.

    실제로는 고영태와 노승일의 스포츠컨설팅 회사 독일 등기는 최순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현지 변호사에게 돈 몇 푼만 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체류비자용 서류에 불과했다. 그리고 최순실은 노승일이 자기 부인 놔두고 딴 여자와 같이 이민오려 하였기에 노승일의 이민 계획을 탐탁치 않게 여겼으므로 고영태와 노승일이 그런 서류를 만든 것을 그때도 몰랐고 아마 지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손석희 등 가짜뉴스 제조기들은 달랑 고영태의 이 사업자 등기 서류 한 장 들고 최순실이 독일에 수십 개 회사를 설립하였다는 가짜뉴스로 난리를 쳤던 것이다.

    최순실에는 회사가 없다. 이것이 팩트이다. 독일에도 한국에도 최순실에는 회사가 없다. 그러나 사기탄핵 음모를 꾸미던 쪽에서는 최순실에게 회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래야 누명을 씌울 건덕지가 있으니깐. 그래서 손석희는 노광일이 고영태 책상 서랍에서 훔쳐 전달해 준 고영태의 독일 스포츠사업 등기 서류 복사본 한 장 가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최순실 회사는 보이지 않자 중앙일보와 JTBC 기자들이 동원되어 최순실 동네 쓰레기통을 날마다 뒤지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순실 회사는 없으므로 손석희는 끝내 최순실 회사를 찾지 못한 채 휴가겸 독일 출장을 마치고 빈손 귀국을 하였다. 그럼에도 노광일이 훔쳐다 준 고영태의 펜싱 컨설팅업자 등기문서는 손석희가 최순실에게 온갖 누명을 씌우는데 요긴하게 사용되었고,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손석희의 가짜뉴스를 근거로 최순실이 독일에 숨겨둔 재산이 9조원이라는 유언비어를 생산해 내었다. 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 기사들 전 통진당 당원 노광일씨가 고영태의 사업자등록증 및 사업 등기 서류를 몰래 바깥으로 유출하면서부터 무성하게 쏟아져나왔다.

3. 손석희는 고영태 녹음파일에는 귀머거리인가?


    최순실에 대한 가짜뉴스 원작자가 손석희였던 것이 아니라, 손석희는 처음에는 이진동 기자가 제공한 정보를 표절하였다. TV조선 이진동 기자와 한겨레 김의겸 기자와 JTBC 손석희 앵커는 가짜뉴스 카르텔을 형성하며 사기탄핵의 방아쇠를 당긴 3인방이다. 기자이기 전에 정치인이었던 이진동 기자와 정치적 야망에 불타던 김의겸 기자는 사기탄핵을 목적으로 정치적 동맹을 맺고 최순실 관련 가짜뉴스거리를 타 언론사에 흘렸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뉴스를 처음 터뜨린 이진동 기자는 최순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그저 그의 측근 고영태가 늘어놓는 거짓말을 듣고 퍼뜨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기사 취재 방법이 옳지 않았다. 고영태와 서로 금전 흥정을 하면서 최순실에 대한 정보를 캐물었던 것이다. 고영태는 최순실에 대한 정보를 더불어민주당과 기자들에게 팔아 돈벌이를 하려 하였고, 이진동 기자는 정적 혹은 경쟁자 진영에 심한 타격을 줄 정보를 원했다. 이진동 기자가 윤석열 검사에 대하여 고영태와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그리고 고영태와 어떤 금전적 흥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진동 기자 편에서 증거인멸을 하였기에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 특검이 자꾸 고영태 녹취록을 감추고, 고영태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을 특검과 헌법재판소가 막은 이유는 2016년 여름에 이진동 기자와 윤석열 사이에 오갔던 정치 음모 대화를 고영태가 발설하면 특검에 치명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언론과 짜고 사기탄핵 음모를 꾸몄던, 즉 국정농단 사건을 조작했던 검사가 국정농단 사건 특검 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윤석열 특검은 원하지 않았다.이진동 기자 광주 후배 고영태에게 증거인멸을 하라, 휴대폰을 한강에 버리라고 지시하였던 데에는 이런 사연도 있었다.

    고영태 녹취록은 이진동 기자가 (모 검사와) 증거인멸을 한 사실이 있으며, 인멸된 증거들 중에는 윤석열 검사와 두 기자간의 아주 나쁜 유착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개 무명 검사였던 윤석열이 어떻게 불과 몇달 만에 특검이 되고, 문재인 정부 출범 2년만에 기수 파괴를 하고 벼락 승진하여 검찰총장이 될 수 있었는가? 그 배후에 사법농단이라 불릴 만한 검찰과 언론의 유착이 있었다. 사법의 칼을 함부로 휘두르기 위해 검사와 협조하는 기자들이 있었으며, 기자들의 기사 방향을 조종하며 언론플레이하는 검사가 있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모 검사와 몇몇 기자들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었으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이 처음부터 끝까지 언론 플레이였다. 그래서 최순실이 가짜뉴스 희생자라는 것 외에는 특검 발표의 알맹이가 전혀 없다. 왜 박영수 특검 수사 팀장이었던 윤석열은 고영태 녹취록을 감추고, 고영태가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을 막았는가? 고영태의 녹취록은 언론플레이로 정치하는 검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뇌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요, 고영태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 결국 기자들과 윤석열 검사간의 대화 내용까지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윤석열 검사하게 불리할 수 있을 이런 진실이 왜 특검과 기자들이 정유라는 멀리 덴마크까지 납치해 오려 하면서도 아주 가까이 있었던 핵심 증인 고영태는 특검이 증인으로 소환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한다. 결코 우연히 윤석열이 '국정농단 사건' 수사 팀장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윤석열이 자기와 오래 전부터 절친하였던 이진동 및 김의겸 기자들과 짜놓고 '사기탄핵' 카르텔을 형성한 후 진행한 것이었다.


    이진동 기자가 처음 터뜨린 최순실 게이트 의혹에 대한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이 구치소에 갇히게 되셨다. 법은 최소한 만인에게 공평하여야 한다. 도대체 2016년 6월 12일에 윤석렬 검사가 이진동 기자와 나눈 밀담이 무엇이었기에 이진동 기자가 그 즈음 고영태와 나눈 밀담을 증거인멸하라고 하였으며, 휴대폰을 한강에 버리라고 하였는가? 다름아닌 자신의 측근 이진동 기자가 증거인멸한 내용이 무엇인지 밝힐 책임이 지금 윤석렬 검찰총장에게 있지 아니하겠는가?


    더불어민주당에서 의인으로 극찬하는 고영태가 민주당 의원들을 위한 스파이 역할을 한 이유는 중상모략을 원하는 정치권에 중상모략거리를 던져주면 큰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영태는 최순실에 대한 정보를 팔아 돈을 벌 목적으로 최순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었다. 고영태가 민주당 의원들과 기자들한테서 금전적 댓가를 받을 목적으로 제공한 정보에는 신뢰성이 문제가 있다. 따라서 정확한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고영태의 녹음파일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다른 언론들보다도 앞서 고영태 녹음파일을 보도하여야 할 JTBC가 고영태 녹음파일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하지 않은 사실을 손석희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4. 윤석열 사단에 얽힌 사기탄핵의 비밀

    고영태 소유물은 최순실 소유물이란 논리로 고영태의 소유물들이 최순실의 국정농단 증거라고 보도한 손석희는 이 점을 생각해 보라. 2016년 최순실에게서 창업자금 5천만원을 빌린 고영태는 3월이 되자 그 돈을 떼먹는 것을 끝으로 이제는 최순실에게서 더 뜯어낼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최순실과 영영 결별하고 최순실에 대한 정보를 정치권에 20억원에 팔아넘기기로 하였다. 고영태 사단은 그런 음모를 꾸미고서도 한 달에 한번씩 최순실을 고영태 사무실로 불러들였기에 최순실은 7월 이전까지는 전혀 자기를 해치려는 그런 무시무시한 음모가 고영태 사무실에 도사리고 있었는지 몰랐다 (고영태 측근 "걔(박근혜)는 죽이고..인터뷰 대가로 20억 받자").

    손석희의 국정농단 뉴스를 최순실의 이름을 손석희로 바꾸어 읽어보자. 만약 모 JTBC 기자가 손석희를 배신하여 손석희의 비밀을 그의 정적에게 1억원에 팔았다면 그 기자가 받아 소유한 1억원이 손석희 소유가 될 수 있는가? 고영태가 최순실에 대한 정보를 정치권에 돈 받고 팔아넘기고 있었을 때는 이미 최순실에 대한 정보가 상품화된 것이기에 최순실과 고영태 사이에 아무런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없다. 따라서 고영태의 소유와 최순실의 소유의 관계에 대해서는 손석희는 전혀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고영태와 윤석열 검사 사단

    고영태 주변에는 이진동 기자의 측근인 윤석열 검사도 있었고, 또 윤석열 사단의 정치검사도 있었다. 이미 고영태 일당 2016년 3월부터 모 정치검사르 만나 검사의 협조와 비호 하에 어떤 음모를 추진하고 있었던 사실이 고영태의 3월 4일자 녹음파일에 밝혀져 있다.

    JTBC가 홍석현 회장으로부터 받은 태블릿을 10월 24일 밤에 검찰에 제출한 이유는 중앙일보 회장에게서 받았다고 하면 입수 경위가 문제가 되니까 훔친 것으로 틀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손석희는 자기가 심수미 여기자를 독일로 보내 놓고도 심수미가 고영태 사무실 쓰레기통에서 줏어온 것이라고 보도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아래는 JTBC가 저녁 9시 뉴스 때 최순실이 태블릿으로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였다는 가짜뉴스를 보도한 직후 검찰청에 태블릿을 제출한 직후 검사장과 주고받은 대화록이다.

    언론사가 장물을 검찰청에 제출하는 것은 공적인 일이다. 장물도 다름아닌 개인 정보가 들어 있을 수 있는 태블릿PC이다. 정상적인 검사장이라면 장물의 임자를 찾아보려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이 검사장은 태블릿이 제출된 직후 검찰청 고위층이 JTBC 고위층과 카톡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만약 검사장이 JTBC측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전화나 서신으로 하고 가급적 그 기록을 보관해 두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검사장은 비밀 대화를 할 목적으로 손석희로 추정되는 JTBC측 사장급 인물과 카톡으로 비밀대화를 주고받았다.

손석희와 윤석열 검사 사단의 카톡 채팅 대화록

    검사장은 JTBC가 10월 24일 밤에 문제의 태블릿 보도를 할 것을, 그리고 보도 직후 그 태블릿을 자기에게 제출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나중에 시청자들에게 해명하였을 때는 훔친 물건이라 검사에 제출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대화록을 보면 검사장은 최순실을 엮을 무언가를 찾는데 JTBC와 협조 관계에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은 한다. 그리고 태블릿 입수 경위를 캐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사장이 "태블릿 존재 및 전달건은 절대 보안 유지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한다. 검사장이 JTBC 에 태블릿 입수경위에 대해 보안유지하라고 당부한다. 그 날 손석희 앵커가 그 태블릿은 JTBC 기자가 10월 20일 고영태 사무실 쓰레기통에서 줏어온 것이라고 보도한 후 금방 온라인상에서 입수 경위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에 대한 주의를 준 것이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난 늦은 밤에 이 검사장은 JTBC의 첫 태블릿 보도 직후의 온라인 반응까지 직접 모니터링하면서 JTBC 에 협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석희와 윤석열 검사 사단의 카톡 채팅 대화록

    이 대화록을 보면 검사장과 JTBC 고위 인물은 채팅 대화를 할만큼 친분이 깊다. 즉 예전부터 언론플레이를 하고 언론의 힘을 이용해 인민재판을 하는데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검사장은 자신이 손석희와 한 배를 탄 인물인 것처럼 말한다. 10월 24일 오후 9시 50분 대화록을 보면 JTBC가 태블릿을 검찰청에 제출하기 전에, 더욱이 손석희가 최순실이 태블릿으로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가짜뉴스 첫 회분을 방송하기 전에 검사장이 코치하였으며, 검사장이 코치해 준 말이 JTBC 기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된 사실이 드러난다. 손석희로 추정되는 인물이 검사장에게 이렇게 말한:

    검사장님 온라인팀에서 잠시 실수가 있었던 거 같은데요. 검사장님 말씀 안에도 충분히 전했고 그래서 방송에서는 전혀 그런 말이 없었는데 그렇게 된거 같습니다.저희는 다 모르는 걸로 하겠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JTBC와 검사장 간의 2016년 10월 24일 21시 50분 카톡 대화록).

    JTBC를 대표하는 인물이 검사장에게 "저희는 다 모르는 걸로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 뭔가 심각한 진실을 이 방송사가 조직적으로 은폐하겠다는 말이다. 손석희가 최순실이 태블릿으로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했다고 처음 방송한지 30분도 채 안되어서 손석희가 검사장에게 무언가 심각한 진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검사장이 검찰측에서도 조직적인 은폐를 할 것이며 JTBC가 성공적으로 은폐할 수 있도록 책임지고 돕겠다고 하였다. 그런 의사와 그런 약속을 그는 이 짧은 답변에 담았다: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21:51)."

손석희와 윤석열 검사 사단의 카톡 채팅 대화록

    JTBC 대표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렇듯 깍듯이 존칭을 쓰며 검사장으로 호칭하는 상대방 검사는 누구일까? 아마도 손석희와 윤석열은 그 검사장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 윤석열 검사는 수사를 한 것이 아니라, 언론플레이를 하였다. 연극은 손석희가 했지만 각본을 짠 인물은 윤석열이었다. 태블릿 조작에 윤석열이 개입되어 있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해서 연설문도 최순실이 써주었다는 대사를 쓴 인물은 윤석열이었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이라 불리는 일군의 정치 검사'들이 이진동, 김의겸, 손석희 등 정치 언론인들과 짜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손석희의 태블릿 조작과 가짜뉴스는 윤석렬 사단이 순식간에 검찰을 장악하고 사법의 칼을 휘두를 수 있게 하였으며, 그들의 언론플레이는 대통령을 엮어 없는 죄를 만들고 탄핵되게 하는데 강력한 무기였다 ([대통령 사건 설계와 음모] 윤석열·이진동·김의겸 삼각 커넥션 실체!)

5. 손석희는 고영태가 돈벌이하려 했던 것은 염려되지 않았는가?

    최순실이 태블릿으로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였다는 주장은 손석희가 꾸며낸 이야기였다. 손석희 외에는 아무도 손석희가 2016년 10월 9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서 직접 받은 태블릿PC가 최순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고영태와 노승일도 최순실은 태블릿을 사용한 적이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손석희는 자신이 홍석현 회장에게서 10월 9일에 태블릿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10월 20일에 심수미 자가 고영태 사무실 쓰레기통에서 줏어온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이렇듯 태블릿 입수경위가 가짜 뉴스였듯이 최순실이 태블릿으로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였다는 뉴스 또한 허무맹랑한 가짜뉴스였다.

    "K스포츠재단 과장, '더 블루 K'서 최순실 수행" 제하의 2016년 10월 4일자 JTBC 뉴스가 손석희의 거짓말의 시작이었다. 박헌영 과장은 고영태의 한국체육대학 2년 후배였으며, 체육계 전문가를 자처하던 고영태가 추천하여 K스포츠재단에 취직시켜 주었기에 고영태가 자기 사무실로 불러 시키는 일을 해주었을 뿐이었다. 최순실은 독일로 이민 가 있었는데 어떻게 손석희는 최순실이 날마다 고영태 회사에 출근하였다고 보도할 수 있단 말인가? 최순실은 어쩌다 한번씩 고국 방문을 하였을 때 고영태가 부르면 채권자 자격으로 잠깐 얼굴을 비쳤을 뿐이었다. 고영태의 펜싱 컨설팅 회사 입구에는 ADT 캡스 보안장치가 있어서 보안카드를 대야 열 수 있었다. 최순실은 단지 고영태에게 사업자등록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었을 뿐 그 이상의 관계는 아니었기에 보안카드가 없었다. 손석희는 박헌영이 최순실에게 고영태 사무실 문을 열어준 것이 최순실을 수행한 것이요, 고로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는 것인데, 그런 논리라면 JTBC 김필준 기자가 방문하였을 때 박헌영이 안내하고 문을 열어준 것은 손석희의 국정농단인가? 더구나 손석희가 보낸 기자가 왔을 때는 박헌영은 여러 시간 함께 술을 마시는 술자리 수행까지 하지 않았던가!

    10월 18일자 뉴스에서 손석희는 "보신 것처럼 기업 돈 수백억원을 끌어다 만든 K스포츠재단이 설립될 때 최순실 씨는 바로 그 K재단을 이용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개인 회사, '더 블루 K' 회사를 만든 셈인데요."라는 말로 최순실을 모함하는 말을 시작한다. 그러나 손석희의 이런 주장에는 다섯 가지 너무도 황당하고 큰 모순이 있다.첫째로, 손석희의 최순실의 돈벌이 걱정은 JTBC의 가짜뉴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손석희 앵커의 말을 박병헌 기자가 이렇게 이어 보도하였다.

그런데 박 과장이 찾았다는 회사를 확인한 결과, 최 씨 모녀가 대주주인 '더 블루 K' 독일법인이 지난 4월 업무 협약을 맺었던 독일 스포츠협회였습니다 (JTBC 2016.10.18).

    손석희 뉴스는 '더 블루 K'는 대주주가 있는 주식회사라는 착각을 준다. 그러나 고영태가 최순실에게 5천만원을 빌려 한칸짜리 사무실에 입주하여 펜싱 컨설팅 사업자등록을 한 후 보증금을 계속 까먹다가 6개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쇄한 회사, 즉 자본금이 가장 작은 업체가 손석희 눈에는 주식회사로 보였는가?

    둘째로, 손석희도 잘 알다시피 고영태에게 사기당한 금전적 피해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손석희에게 최순실 국정농단 증인은 그런 상습적인 사기꾼 고영태밖에 없는가? 최순실도 고영태의 거짓말에 속은 피해자들 중 한 명인데 그 피해자에게 돈벌이 누명을 씌운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만약 손석희가 정말로 고영태를 신뢰했던 것이라면 최순실이라고 초면에 고영태를 신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고영태가 장애자들에 펜싱을 가르치는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최순실이 5천 만원 안 빌려줄 수 있었겠는가?

    셋째로, 손석희가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우려 모함할 때 자주 쓰는 애매모호한 말 중에 "...셈인데"가 있다. "최순실 씨는...'더 블루 K' 회사를 만든 셈인데" ⚊ _이 말은 도대체 최순실이 만들었다는 말인가 안 만들었다는 말인가? JTBC 사장 손석희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모르는가? 이런 근거가 불확실하게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은 뉴스 보도로 적합치 않을 것을 모르는가? '더 블루 K'는 장애 펜싱 교습소이므로 교습소가 회사라는 착각을 주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고영태가 최순실에게서 빌린 5천만원으로 사무실 월세 내고, 자기 월급 챙기고, 여경리 등 자기가 고용한 직원 두 명 월급 주다가 6개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업 신고한 업체이다. 만약 돈을 빌려준 자가 회사 설립자라는 손석희의 미개한 논리를 국제사회에 적용하면 한국의 모든 기업들과 공장들은 일본 등 한국에 차관을 제공한 국가들이 설립한 것이 된다. 이미 폐업 신고한지 몇 달 되고 고영태도 완전 포기하고 태국으로 갔기에 이제 단 한 명의 직원도 없고 사무실 임대 기간만 아직 몇 달 남아있을 뿐 완전히 없어진 그런 영세업체였다. 그렇다면 손석희는 도대체 뭐가 걱정이 되어 그토록 요란하게 호들갑을 떨었는가? 고영태가 폐업 신고한지 몇달 된 업체를 다시 일으켜 돈을 벌어 최순실에게 빌린 돈을 갚을 것이 걱정이 되었는가?

    넷째로, 손석희의 방송은 손석희의 주장과 상반되는 행동이었다. 최순실은 K재단에 가본 적도 없고, 그 재단에서 가장 하급 직원이었던 박헌영을 고영태의 소개로 고영태 사무실에서 몇번 보았을 뿐이었다. 손석희는 최순실이 K재단을 이용해 돈벌이를 할까봐 걱정이 되어 방송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순실은 독일로 이민간 지도 이미 오래 되었고, 전경련은 10월에 K재단을 해산할 예정이었다. K재단이 해산되면 손석희의 근심거리가 없어지는 것인데, 손석희는 오히려 전경련이 K재단을 해산하지 못하도록 여론몰이했던 것은 실로 이율배반적 모순이다.

    다섯번째로, 2016년 10월 18일에 어째서 손석희는 고영태의 펜싱 컨설팅 업체는 계속 출자금만 까먹다가 반년만에 폐업하여 없어진지 오래된 작은 업체였다고 보도하지 않고, 마치 여전히 영업 중이었던 것처럼 이렇게 가짜 뉴스를 보도하였는가?

    대기업이 돈을 내 만든 K스포츠재단과 최순실 씨의 개인 회사 '더 블루 K'는 조직과 돈, 인력까지도 얽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JTBC 2016.10.18).

    이 날의 방송 요지는 최순실이 돈을 벌지 모르니 국정농단이라는 것이었다.그러나 만약 손석희의 보도대로 조직과 돈, 인력까지도 얽혀 있었다면 이 뉴스 나가기 이미 석 달 전에 고영태의 개인 업체가 폐업 신고하고 문을 닫았을 리가 있었겠는가? 이 점을 손석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K스포츠재단 예산이 단 1원이라도 고영태 사업을 위해 전용된 적이 있었는가? 고영태가 사업을 하여 번 돈을 단 1원이라도 최순실에게 준 적이 있었는가? 손석희는 10월 4일 고영태 사단과 밀담을 나눈 후에 이미 고영태와 최순실이 결별한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재인의 측근 허인회의 수십 억대 태양광 비리에 비하면 푼돈 용역을 고영태가 재단에 신청했으나 두번 연거푸 거절당했다. 그래서 펜싱 용역 신청은 포기하고 노승일 등 고영태 사단이 사무총장을 쫓아내고 고영태가 부사무총장으로 들어가 직원 봉급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전경련이 재단 해산을 결정하였으므로 고영태의 음모가 성사될 수도 없었고, 설사 고영태가 거기서 봉급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최순실과는 완전 결별한 지 오래되어 고영태가 단 1원이라도 최순실에게 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최순실이 고영태한테서 돈을 받아 돈을 벌 가능성은 제로였으므로 손석희가 그것까지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심수미가 10월 20일 저녁에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태블릿PC를 줏어 가지고 온 후에 손석희가 '최순실 국정농단'이란 제목의 뉴스를 제작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에 손석희가 미리 '최순실 국정농단'이란 제목을 만들고, 그 제목에 맞추어 뉴스를 제작하였다는 사실의 또 하나의 증거가 10월 18일자 뉴스였다. 10월 20일에 태브릿을 입수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쇼였다.

    그 날 10월 18일에 손석희가 박병현 기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보도하였다:

그런데 박 과장이 찾았다는 회사를 확인한 결과, 최 씨 모녀가 대주주인 '더 블루 K' 독일법인이 지난 4월 업무 협약을 맺었던 독일 스포츠협회였습니다. K스포츠재단 직원인 박 과장이 최순실 씨 개인 회사 계약을, 그것도 재단 돈으로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JTBC 2016.10.18).

    손석희는 픽션소설을 잘 쓴다. 그러나 손석희가 픽션소설과 뉴스를 혼동하면 그것이 가짜뉴스가 된다. 손석희가 여아나운서 안나경과 같이 독일 갔다 오면 독일에 대한 모든 것에 정통해지는가? 만약 독일에서 그런 계약이 있었다면 최순실과 고영태가 결별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고영태와 노승일에게 원래 스포츠인의 자격으로서 독일로 이민갈 계획이 있었고, 독일에서는 스포츠 컨설팅 업체 등기를 스포츠 관련 협회에서 하니깐 고영태가 자기 한체대 후배 고영태를 시켜 등기 절차를 마무리하게 한 것뿐인데 손석희 눈에는 이것이 계약으로 보이는가? 그렇게 보인다면 도무지 언론사 사장 자격이 없다.

6. JTBC가 태블릿에 삽입한 오방낭 사진

    손석희가 10월 9일에 홍석현 회장에게서 받은 태블릿을 24일 저녁 뉴스 때 최순실 태블릿이라고 허위 보도하더니 바로 그 다음날부터 '최순실 파일'이란 신조어를 사용하였다:

[앵커] 취임식 당일 박 대통령은 오색비단을 모아 만든 복주머니 오방낭을 개봉하는 행사를 가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최순실 파일에도 오방낭이 등장합니다 (JTBC 2019.10.25).

    이 오방낭 사진이 사기탄핵의 도구였다. 오방낭 사진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샤머니즘으로 엮는데 이용되었다. 그런데 왜 손석희가 '최순실 파일'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는가? 그 이유는 손석희가 보여준 오방낭 사진은 문제의 태블릿 안에 들어있는 사진이 아니라,JTBC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사진 파일이었기 때문이다.

    손석희는 자기가 확인하지 않은 것을 보도했다. 아래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태블릿PC 감정결과 45~46쪽은 태블릿 캐시 폴더 안에 있는 오방낭 사진은 JTBC가 삽입한 것이 거의 확실함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태블릿은 PC와 달라서 사용자가 메뉴에 있는 파일만 열람할 수 있고, 캐시 안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용자가 이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여는 순간 그 파일이 캐시 폴더 안에 저장된다. 그러나 캐시 폴더 안의 무수히 많은 파일들은 사용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파일과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태블릿에서는 캐시 폴더 탐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방낭 사진은 JTBC 가 태블릿에 삽입한 것이라는 국과수 감정보고서

    태블릿은 휴대폰과 같은 하나의 모바일 기기이다. 대부분의 태블릿 사용자들은 캐사(cache)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태블릿 안에 캐시 폴더가 있는 것을 모른다. 캐시 폴더가 있는 것을 알아도 IT 전문가가 usb 케이블을 꽂고 컴퓨터와 연결시켜야만 마우스를 이용하여 컴퓨터 모니터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캐시 안에는 사용자 모르게 워낙 많은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어서 포렌식을 하지 않는 한 캐시 안의 특정 파일을 단번에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김필준 기자는 2016년 당시 JTBC의 신참 애송이 기자였다. 태블릿PC 입수경위에 대하여 손석희가 여러차례 말바꾸기한 후에 최종적으로 발표한 것은 김필준이 10월 20일 절도하여 24일 검찰에 제출하였다는 것이다. 손석희는 박근혜 대통령을 샤머니즘으로 엮고 최순실의 꼭둑각시 누명을 씌우는 엄청난 가짜뉴스는 바로 이 김필준의 입을 빌려 하였다:

그런데 최 씨는 취임식이 열리기 한 달 전인 1월 30일, 오방낭의 초안으로 보이는 사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오방낭 행사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귀주머니 사진도 받았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촬영한 지 한 시간 뒤에 바로 최 씨가 열람했습니다. 최 씨가 취임식 당일 대통령의 각종 행사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JTBC 2019.10.25).

    김필준 기자도 손석희도 최순실의 개인 이메일 주소를 모른다.

    태블릿에서는 최순실의 이메일 주소가 없는데 김필준은 최순실이 오방낭의 초안으로 보이는 사진을 받았다고 단정하여 보도하였는가? 위의 국과수의 태블릿 감정 결과에 따르면 1월 30일자 이메일에는 오방낭 첨부 파일이 없으며 사용자의 열람 기록도 없다. (오방낭 사진에 대한 국과수 감정 결과는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 40쪽 이하에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음.) 김필준이 태블릿 캐시 폴더에 있는 사진을 열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usb 케이블을 꽂고 JTBC 컴퓨터를 통해서 보는 것인데, 그 태블릿에 JTBC usb 케이블을 꽂는 순간 그 태블릿은 오염되었다. 왜냐하면 태블릿에 JTBC usb와 usb 케이블이 꽃히는 순간 JTBC는 얼마든지 파일을 태블릿 안에 삽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IT 전문가가 usb 케이블을 꽂고 보아도 캐사 폴더 안의 파일 하나하나를 전부 분석하려면 1년 이상 걸릴 수 있는 대작업이다. 그런데 김필준 기자가 어떻게 단 이틀만에 콕 찝어서 오방낭 사진을 찾아내었을까? 오방낭 사진이 캐시 폴더 안에 들어있기 위해서는 이메일로 전송되거나 JTBC가 usb를 꽂고 삽입하는 것인데 이메일 첨부 파일이 없으므로 국과수는 JTBC가 usb를 꽂고 임의로 태블릿에 오방낭 사진 파일을 심은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하는 객관적 분석 자료들을 제시하였다.

    2016년 10월 25일 손석희가 "그런데 최순실 파일에도 오방낭이 등장합니다"라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손석희가 태블릿에서 오방낭 사진을 직접 확인하고 보도한 것이 아니었다. 태블릿 안에는 전혀 최순실 파일이 존재하지 않았고, JTBC가 JTBC 컴퓨터 안에 최순실 파일을 조작해 놓았으며, 그래서 손석희는 차마 "태블릿에도 오방낭이 등장합니다"라고 하지 못하고, "최순실 파일에도 오방낭이 등장합니다"라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최순실 파일'은 JTBC가 2016년 10월 9일부터 보름간 조작한 파일들을 일컫는다.

7. 오방낭 vs 문재인의 애창곡 임을 위한 행진곡

    오방낭은 조선 시대에 궁중이나 양반의 집에서 사용하던 장식품이며,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는 취임식 때 한복을 입으시는 대통령을 위해 색동 한복에 잘 어울리는 오방낭 개방 행사를 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기탄핵 세력은 이것은 샤머니즘으로 엮어 대통령을 탄핵시킬 목적으로 태블릿에 오방낭 사진을 심고 오방낭 뉴스를 크게 터뜨렸다. 그러나 그 동안 국민 누구나 민속 장식품으로 여기던 오방낭마저 샤머니즘으로 엮어 대통령을 마녀사냥하고 탄해한다면 문재인이야말로 샤머니즘으로 엮어 탄핵해야 할 이유가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문재인이 국가행사에서 부르는 애창곡이다. 2017년의 5.18 기념행사를 앞두고 문재인이 5.18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황석영이 1982년에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든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도대체 1980년에 발생한 광주폭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문재인이 왜 남의 영혼결혼식 노래를 국가행사 때 부르는 노래로 삼았는가? 임진왜란을 자주 들먹일만큼 유식한 문재인은 영혼결혼식이야말로 샤머니즘 문화원에서만 있는 예식이란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올려줄 때 넋풀이를 하는 노래이다. 즉,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는 굿춤을 추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다. 그러면 광주폭동이 발생하기 1년 반 전에 자기 오빠 박형선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5.18 국가유공자가 된 박기순의 원한은 무엇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귀신을 불러내는 노래이다. 황석영은 광주폭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백기완이 지은 시 '묏뵈나리'를 표절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붙였는데, 이시는 무당이 읊는 주술가(呪術歌)로 구성되어 있다. 백기완의 시에서 “젊은 남녘의 춤꾼”은 종북 이념을 가지고 굿춤을 추는 무당이다. 이 시에서 “산 자여 따르라”는 먼저 죽은 남로당과 빨치산 계열의 혁명가들의 혼백이 후배 운동권에게 하는 말이다. 황석영이 이 가사를 표절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을 때 귀신에게 바치는 노래로서 만들었다. 즉,황석영은 1978년 12월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박기순을 처녀귀신으로 간주하고, 처녀귀신의 원한을 풀어주는 노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샤머니즘 의식으로 영혼결혼식을 올려줄 때 넋풀이긋이라는 무당 푸닥거리를 한다 . 그런 무당 푸닥거리를 한 후 황석영이 넋풀이 테이프를 제작하였는데, 그 마지막 무당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사람들이 그 노래가 무당 노래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황석영이 소련 탱크부대 군가곡을 표절하여 곡을 붙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음악을 모르는 황석영이 직접 소련군 군가를 표절한 것이 아니라, 당시 한국판 베트콩이었던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전사 김남주의 전진가 곡을 표절한 것이었다. 적화통일 세력이었던 '남민전'의 적은 대한민국과 미국이었다. 그래서 광주가 낳은 공산주의 혁명가 김남주는 미국을 저주하는 반미시를 지어 소련 텡크부대 군가곡을 붙여 만든 노래를 전진가라고 불렀으며, 황석영이 그 곡을 표절하여 만든 노래를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황석영이 그 곡을 표절하였을 때는 무당 푸닥거리할 때 부르는 노래로 그 형식이 바뀌었기에 저주의 의미가 한층 더 강렬하여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행사 때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셨고, 문재인은 부르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면 박 대통령과 문재인 중 누가 샤머니즘적인가?

    그러면 이렇듯 넋풀이긋을 할 때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과 5.18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전사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라는 것이 그 관계이다. 남한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지상 목적으로 하던 과격한 종북세력 '남민전'의 적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이었다. 그래서 종북세력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저주하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애창하는 것이요. 이 노래는 따라 부르는 사람을 차츰 종북 이념에 순응하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오늘날 누가 확실하게 대한민국 편이요,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속했으며, 누가 주사파요 종북세력인지를 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인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임을 위한 행진곡』 (Google Play)에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때로 보화가 깊숙히 감추어져 있을 때가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5장 2. 나. "윤상원 조직이 사전 계획한 무장반란 음모"(본서 216쪽 이하)가 바로 그 감추인 보화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인민재판 판결이 뒤집힐, 즉 '전두환의 내란'이 '김대중의 내란'으로 바뀌는 핵심 증거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윤상원의 조직이 조국의 지하조직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전신이라는 것을 보면 지금 문재인이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고 하려는 검찰 계획이 실은 사회주의 쿠데타의 일환이라는 사실이 보인다.

    광주폭동이 전두환의 내란이라는 주장은 김대중의 내란이 사회주의 쿠데타였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등장하였다. 지금 한국은 김대중의 일당이 거리 정치로 사회주의 쿠데타를 시작한 지 40년 만에 사회주의 쿠데타가 완성되느냐 국민이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느냐의 기로에 처해 있다. 1980년 봄의 김대중의 내란과 광주사태의 진실을 면 한국 현대 정치의 큰 그림이 보인다. 한 예로, 2019년 8월 9일 문재인이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지명한 것을 들어보자. 문재인과 조국 모두 김대중의 내란 시도의 수혜자들이다. 광주폭동 당시 윤상원과 이태복이 전민노련 공동대표였으며, 전민노련은 1980년 5월 15일에 청와대와 중앙청과 방송국들을 점령하고 사회주의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 날 늦은 저녁 때 서울역광장에서 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갑자기 시위대 해산 광고를 하였기 때문에 전민노련의 청와대 점거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그 날도 전민노련의 사회주의 쿠데타 음모의 배후가 김대중이었다. 그래서 전민노련 대표 이태복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사회주의 망상가요 한낱 데모꾼에 불과하였음에도 김대중이 훗날 1998년에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김대중의 내란음모 동지 이태복의 후계자가 백태웅이요 백태웅의 후배가 조국이다.

    조국은 머리 속이 텅빈 인간이요, 그의 텅빈 머리 속 편협된 이념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이런 자가 어떻게 서울대 법대 교수가 될 수 있었으며,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장관으로 지명되는 출세를 하였는가? JD 학위도 Ph.D. 학위도 없는 조국이 서울대에 미국 형법을 가르치는 교수였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학사 비리이다. 조국의 학위는 S.J.D.인데, 이는 학문적 학위가 아니므로 법대 교수 임명 요건을 충족치 못한다. 더구나 그는 사법고시도 연거푸 네 번 낙방하여 전혀 법조인으로서의 현장 경험조차 없는 자이다. 조국이 1999년에 울산대학교 조교수가 된 것도 그에게는 너무 과분하였는데, 2001년에 서울대 법대 조교수로 영전하였는데, 좌익 출신을 위한 김대중 정부 특혜에 의한 영전이었다. (구체적으로는 김대중 정부 하수인 안경환이 조국을 좌파 스타로 키울 목적으로 직권남용으로 그를 서울법대 교수로 채용하였다.)

    어째서 반국가단체 사노맹 출신이 김대중 정부 특혜 대상이었을까? 전술한 바와 같이 1980년 5월에 김대중과 손잡고 사회주의 쿠테타를 시도한 세력이 전민노련이었다. 그리고 전민노련이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사노맹)의 원뿌리였다. 광주무장봉기 주동자 윤상원이 이태복과 더불어 전민노련 공동의장이었다. 그리고 전민노련 소속 노동자들 및 불순세력이 청와대와 중앙청과 방송국들을 점거할 목표로 학생으로 위장하고 시가행진하던 바로 그 날 5월 15일에 문재인은 경희대 시위대의 경찰 살인사건 주동자였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자기가 그 주동자였던 경찰 살인사건 해결도 안하고 변호사 개업을 하고, 사기탄핵으로 정권찬탈을 하더니 지금은 절대로 법무장관이 되어서는 안될 인물을 법무부장관으로 지명한 것이다.

    1980년 5월 15일의 시위를 김대중은 이란 호메이니의 회교도 혁명을 벤치마킹하여 조직하였고, 윤상원과 이태복의 전민노련은 베트콩의 임시혁명정부를 벤치마킹하여 조직하였다. 김대중의 내란음모 주동자들의 본래 계획은 청와대와 전남도청을 동시에 점거하는 것이었다. 1975년 4월 30일에 월남 대통령은 월맹군이 아닌 시민군 임시혁명정부에 항복하였으며, 그날부터 14개월간의 시민군에 의한 통치과정을 거쳐 1976년 7월 2일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완전 흡수되었다. 1980년 봄에 전민노련은 그것이 남한에서도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자, 5월 21일부터 무장폭도들이 전남도청을 점거하고 광주에서 무장난동자들에 의한 통치가 시작되었을 때 그 정치적 의미는 광주에 임시혁명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이었다. 무장봉기를 사전 준비한 윤한봉과 윤상원에게는 그 정치적 의미가 중요하였다.

    사노맹 조직은 남한 공산당 조직이었다. 레닌의 ‘黨(당)조직 건설원칙’을 모방해 중앙위원회를 최고지도부로 하고 그 밑에 조직위 ,편집위 각 市都(시도) 지방위를 두었다. 부설조직으로는 남한사회주의과학원, 노동해방연구소, 사회주의학생운동연구소, 민주주의학생연맹을 두었다, 조직원 파견그룹으로는 민중당, 전노협, 노동해방문학사 등을 두고 단위조직을 철저히 비밀 운영했다.

    사노맹 사건 중에서 우리가 특히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사노맹이 제2의 광주무장봉기를 조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노맹은 각 운동단체를 VDR(민족혁명) 노선으로 통일하기 위해 민중당, 인민노련, 전노협,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등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정파투쟁’을 전개하고 《노동자신문》,《말》지 대학신문 등의 기고문을 통해 NDR(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이념 전파 및 타 정파와의 사상투쟁을 벌여왔다. 또한 ‘공장의 혁명 요새화’ 원칙에 따라 무장봉기 때 방위사업체인 창원공단 내 (주)통일과 한국중공업을 무기탈취 대상으로 선정했다. 인천지방위원회에서는 사제폭탄 제조법, 총기제작법, 무기탈취방법 등을 연구하며 무장봉기 계획을 세웠다 (조국 교수 연루 지하조직 '사노맹'의 실체).

    문재인이 자신이 1980년 5월 15일 경찰 살인사건의 주동자였다는 문제는 해결 안하고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 개혁 적임자가 전혀 검사로서의 실무 경험이 없는 조국인가? 조국은 사노맹 출신이요, 사노맹은 이석기의 지하혁명조직 RO의 원류였다.

    박원순 딸이 서을대 미대에서 법대로 전과하는 것은 불법인데 어떻게 가능하였는가? 김대중 정부 시절 서울대 법과대학장이 된 안경환이 직권남용으로 행한 학사비리였다. 박원순과 더불어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던 안경환은 박원순의 아름다운재단 이사였다. 미국 형법을 전공한 적이 없는 조국에게 안경환이 미국 형법 강의를 맡긴 것도 직권남용에 의한 학사비리였다. 참여연대는 어용 정치세력으로 크게 육성된 단체였다. 안경환이 참여연대 초대집행위원장을 지냈고 조국이 2000년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을 맡더니 이듬해 서울대 조교수가 됐다. 2006년에 노무현이 안경환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자 조국이 인권위 위원을 겸직하며 계속 승진하여 2009년 4월 1일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되었다. 이렇듯 조국은 미국 형법 전공자가 아님에도 좌파단체 활동을 근거로 안경환이 법대 교수 자리를 주었다. 즉, 조국은 실력으로 서울법대 교수가 된 것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 어용활동을 하라고 안경환이 밀어준 것이었다.

    1980년 봄에 김대중의 내란음모 동조자들이 모두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의 단기적 목표는 김대중을 대통령 만드는 것이었으나 궁극적인 목표는 남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것이었다. 운동권이란 명칭으로 포장된 그들의 정체는 한국판 베트콩이었으며, 이런 류의 종북좌파 운동권은 '민주'라는 단어를 늘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라는 뜻으로만 사용하였다. 현재 남한의 정권을 찬탈하여 장악한 종북좌파의 다음 단계 목표는 법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것이요, 그래서 문재인이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지명한 것인데,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딸 특혜입학 등 조국의 여러가지 대형 비리사건들 때문에 뜻밖의 좌초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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